벨직 신앙고백 The Belgic Conf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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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직신앙고백 Belgic Confession, 1561
◆개 요
개혁주의 교회에서가장 오래된 표준 신앙고백을 말하라고 하면 벨직신앙고백이라 하겠다.16세기 화란에서는 로마 카톨릭 교회 통치 아래 개혁교회가 심한 박해를 받게 되는데 이러한 때에 개혁주의자들은 그 박해에대항하면서 오직 성경에서 주장하는 참된 진리를 외치게 된다. 1561년 화란의 개혁교회는 교회가 핍박받고있는 상황에서 벨직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다.
이들의 선언은“진리를 위해서라면 등에 채찍을 맞아도, 혀가 칼로 잘려도, 입을 지지고 막아도, 우리 온 몸이불살라지더라도 진리를 양보할 수 없다.”라 하며 어떠한 박해에서도 진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선포한다.
이때 이들의진리 선포는 약 2년전 존 칼빈에 의하여 쓰여진 “기독교 강요”에 기본 한 것으로 ‘귀도 드 브레’(Guido De Bres)라는 분에 의하여 1561년에 공식적으로 주창된다.
프랑스에서는 1566년에 벨직 신앙 고백의 기초가 만들어지고그후 1618-1619 년에 있었던 화란에서 있었던 도르트 종교 회의에서 벨직 신앙 고백은 개혁주의의 공식신앙 고백으로 채택되었다.
◆ 벨직 신앙고백서의역사적 배경
벨직고백서는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귀도 드 브레가 작성하였다.그는 카톨릭 신자였다가 개혁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어고 그 당시 금서였던 성경을 읽고 개혁주의를 전파하다가1567년에 순교를 당하였다. 그가 고문을 당하며 쓴 처절한 편지는 우리에게 감동과도전을 더해 준다. 이처럼 벨직고백서는 신학자의 책상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작성된것이다. 그러므로 벨직고백서는 순교자의 신앙의 생명력을 표현한 문서이다. 이 문서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 기초 위에 세워졌고 칼빈주의 맥락 속에서 발전된 신앙고백서이다.
정치적인 배경을보면 찰스 5세가 공적으로개혁교회를 이단으로 선포하고 그들을 처형하라는 칙령을 발표하고 대대적으로 개혁교회의 성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1523년, 화란에서는 어거스틴파의 수도승이었던헨리 보에스(Henry Voes)와 요한 에쉬(John Esch)가브리쉘에서 말뚝에 묶여 화형을 당하였다.
이런 핍박의역사는 스페인의 필립 2세에 와서 더욱 심해져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 당시 화란을 다스리던 필립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아버지 찰스 황제처럼 카톨릭의 열렬한 추종자였다. 화란은 프랑스와긴밀한 교류를 하고 있었고 프랑스에 확산되었던 개혁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종교 개혁의 움직임을 귀찮게 여겨왔던필립 2세는 종교 개혁을 근절하기 위해 “스페인의 탄압”(SpanishInquisition)이라는 종교 고문 제도를 도입하였다. 역사학자들은 그 탄압을이렇게 설명한다. "자연의 모든 위대한 힘이 이 핍박에 동원되었다. 불은 사람을 태우는 데, 물은 사람을 수장시키는 데, 공기는 공중에 사람을 매다는 데, 흙은 사람들을 생매장시키는 데에 사용됐다."필립 2세는 개신교인을 살려두기보다는 화란을 초토화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따라서 필립 2세 아래서 순교당한 개혁교회 성도의 숫자는 10만 명 가량되었다. 이는 초대교회 때에 로마 황제 아래서 순교당한 성도들의 수보다 더 많은숫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핍박 속에서 화란의 참된 개혁교회들이 많은 열매를 내도록 역사하였다.
이와 같은순교의 분위기 속에서 아드리안드 사라비아(Adriende Saravia))와 모데투스(Modetus)와 윙켄(G.Wingen)의 도움을 받아서 귀도 드 브레(Guido de Bres)가 프랑스어로1561년에 벨직 신앙 고백서를 작성하였고 후에 엔트웝의 왈룬(Walloon)과보르쥬(Bourges)의 프렌시스 쥬니우스(Francis Junius)에 의해서 좀 더 분명한 칼빈주의적 정신이 포함된 형태로 완성되었다.
벨직 신앙고백의가치는 개혁주의 교회 안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그 이유는 벨직 신앙고백서는 1566년의 엔트웹 회의와 1568년 베셀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채택이 되고 더 공적으로 채택이 된 것은 1571년 엠덴 총회와전국 도르트 총회(1574), 미델부르그 총회(1581), 그리고 마침내1618-1619년에 있었던 도르트회의에서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과 함께 개혁교회 가장 중요한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다.특히 도르트 총회에서는 이 신앙고백서를 개혁교회의 규범 교리의 하나로서 채택하였고, 모든 교회의 책임자는 반드시 이 고백에 서명하도록 규정하였다. 이와 같이 벨직 신앙고백서는개혁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신앙고백서로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제 1 조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만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불리는 유일하시며 단일 본질의 영적 존재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한다.그는 영원하시며 다 알 수 없으며 보이지 않으며 불변하시고 무한하시고 전능하시고 완전히 지혜로우시며 정의로우시며 선하시며모든 선이 넘쳐 흐르시는 원천이시다.
제 2 조 하나님께서그분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시는 방식
우리는 하나님을 두 가지 방법으로 안다.
첫째는, 우주의 창조와 유지와 통치를 통한 것인데,이 우주는 우리 눈 앞에 있는 가장 훌륭한 책과 같고 그 안에는 있는 크고 작은 많은 피조물들은 글자와 같아서 그것들을통하여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롬 1:20)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신성과 같은 하나님에 관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우리는 분명하게 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확증하기에충분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변명할 수 없다.
둘째는, 하나님은 그의 거룩하고 신성한 말씀으로 더분명하고 충분히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알리신다. 즉, 현세에 있어서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구원에 관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 분명하고 충분하게 우리에게 알리신다.
제 3 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말씀이 사람의 뜻으로 전달된 것이 아니고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벧후 1:21)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은 대로 쓴 것이라고 믿는다.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손가락으로 율법의 두 돌판을 쓰셨다. 나중에 하나님은 우리의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종들,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글로 쓰도록 맡기셨다.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거룩하고 신성한 글을 성경이라고 부른다.
제 4 조 성경의 정경들에 관하여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는 정경으로서 어떤 이의도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책들로 불린다.
구약성경의책들 : 모세오경,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네 대예언자들, 즉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및 다니엘; 그리고 12 소 예언자들, 즉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신약성경의책들 : 4복음서들,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요한복음;
사도행전, 바울의 13편지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다른 사도들의 일곱 편지들,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이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에 관하여
우리는 이모든 책들을, 그리고이 책들만이, 우리의 신앙의 조정과 토대와 확인이 되는 거룩한 정경으로 믿는다. 이는 교회가 이 책들을 정경으로 받고 또 동의하였기 때문이 아니고 그 책들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과 또 그 증거가 그 책들 자체안에 들어 있음을 성령이 우리 마음 안에서 증거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경 안에서 예언된 것들은 전부 그대로성취되고 있음을 눈 먼 자들이라도 알 수 있다.
제 6 조 정경과 외경의 구별에 관하여
우리는 이러한성경을 외경과 구별한다. 즉 제 3, 제 4 에스드라서, 토빗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에스더 부록, 아자리야의 기도, 가마솥 속의 세 자녀의 노래, 수산나의이야기, 벨과 용의 이야기, 므낫세의 기도, 마카베오 상.하의 책들이 외경이다. 이 모든 외경들은정경의 책들과 일치하는 내용에 관한한 교회가 읽고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외경들은 각 책의 증거에있어서 우리의 신앙과 그리스도교의 어떤 핵심을 확정할 만한 힘과 권위를 얻기에는 거리가 먼 책들이다. 더구나이 외경들이 정경의 권위를 저하시키는데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제 7 조 성경의 완전성에 관하여 (성경의 충족성)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을 충분히 담고 있으며, 사람이 구원을 위하여 믿어야 할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충분히 가르치고 있다고 믿는다. 하나님이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예배의 전체 방식이 성경 안에 충분하게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이 “그러나 우리나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갈 1:8)라고 말한 것처럼 비록 사도라할지라도 누구든지 지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과 다르게 가르치는 것은 부당하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다가어떤 것을 보태든지 혹은 거기서 어떤 것을 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며(참조, 신 12:32), 따라서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면에서 가장 완전하고 완성된 것이 분명하다.사람이 쓴 어떤 신성한 책이 있다 하더라도 그 가치에 있어서 성경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진리는 지고하기 때문에 관례, 대중, 고전,연륜, 전승, 회의들, 법령들, 혹은 제도 등등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사람은 다 거짓과 더불어 스스로 속고 속이며 공허 그 자체보다도 더 공허하기 때문이다(참조,시 62:9).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 대로 그 어떠한것이든지 이 절대무오한 규칙과 조화되지 않는 것을 마음을 다하여 배격한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요이 1:10-11)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제 8 조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지만 삼위로 구별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따라 우리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을 믿는데, 그분은 하나의 단일 신성을 가지신 삼위이며, 그 삼위는 서로 교환할 수 없는 특질에 따라서성부, 성자 및 성령으로 실질적으로, 참으로, 그리고 영원히 구별된다. 성부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기원이며 시작이시다.성자는 ‘말씀’이며, 성부의 지혜이며 형상이시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시는 영원한 능력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구별에의하여 셋으로 분리되지 않았으니,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부, 성자 및 성령은 각각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를 가지시며 그들은 각각의 특질에 의하여 구별된다. 그러나 이러한 모양으로 삼위는 단 한 분의 하나님이시다.
그리하여 성부는성자가 아니며, 성자는성부가 아니며, 또한 성령은 성부도 아니고 성자도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렇게 구별된 삼위는 나눠지거나 서로 혼합되었거나 혼동되지 않는다. 이는 성부는 육신을 입지 않으셨고성령도 또한 그러하고 성자만이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이다. 성부는 성자 없이, 또한 성령 없이 계신 적이 없으셨다. 왜냐하면 삼위는 다 같이 영원하고 동일한 본질을 가지셨기때문이다. 진리와 능력과 선과 자비에 있어서 삼위는 다 같이 한분이시기 때문에 첫째 되는 분도,또한 나중 되는 분도 없다.
제 9 조 성경이 증거 하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 진리는성경의 증거들은 물론 삼위의 구별되는 역사, 특별히 우리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에 의하여 우리가 안다. 성 삼위일체를 가르치는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기록되고 있는데, 그것을 전부 언급할 필요는 없으나 신중하게 몇몇을선택할 필요는 있다.
창세기 1장 26,27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사람을 만들고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또한 창세기 3장 22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우리의 형상을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하신 말씀에서 한 신격(divineperson)이 아니라 여러 신격이 있음을 말하지만 “창조하시고”라고 할 때는 오직 한 하나님이 있음을 나타낸다.물론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신격이 몇인지를 말하지 않지만 구약에서 모호하던 것이 신약에서는 매우 분명하여진다.우리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는 성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성자는 물에있었고 성령은 비둘기 모양으로 성자 위에 내려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에게 세례를 베풀 때의 규정을 제정하셨다.“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 우리 주님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천사가 대답하여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눅1:35). 또한 고린도후서 13장 13절,“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도 삼위에 대해 말한다.이 모든 구절에서 볼 때 우리는 하나의 유일한 거룩한 본질 안에 세 품격이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배우게 된다.
이 교리는인간의 모든 이해를 초월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믿되 내세에는 완전한 지식과 그 열매를향유하게 될 것을 기대한다. 더욱이 우리는 이제 우리를 향한 각 삼위의 구별되는 직책과 사역을 살펴야 한다. 성부는 그의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아들은 그의 피에 따라 우리의 구주이며 구속자로, 그리고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재하심에 따라 우리의 성결자(Sanctifier)라고 불리운다.
사도시대 이후로바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된 교회는 유대교인,무슬림들에 대항하여, 또한 마르키온, 마니교,프라키아스, 사벨리우스, 마소사타의 바울,아리우스, 그리고 정통 교부들로부터 정당하게 정죄된 사람 등과 같은 어떤 거짓 크리스찬들과이단들에 대항하여 이 삼위일체 교리를 언제나 유지하고 보존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 교리에 있어서 우리는 세개의 신조, 즉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를 받아들인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초대 교부들이 합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인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유일한 독생하신 아들이며 그는 지음을 받거나 피조되지 않고(만일 그렇다면 그는 한 피조물일 것이다)영원부터 탄생하셔서 아버지와 같은 본질을 가지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영광을 드러내시며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지니고 계시며(히 1:3) 모든 것에 있어서 아버지와 동등하심을 우리는 믿는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우리 인간의 본성을 취하신 때 부터만이 아니고 영원부터 아버지의아들이시다.
모세는 하나님이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였다. 사도 요한은 만물이 말씀에 의해 지음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말씀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서는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지으셨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바울 역시 하나님이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를통하여 지으셨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으로,말씀으로, 아들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불리우는 그분은 만물이 창조되던 그때에 이미 존재하셨으며 만물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선지자미가는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라고 말하고 히브리서의 사도는“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히 7:3)라고 말한다.그러므로 그는 참된, 영원한, 그리고 전능한하나님이시니, 우리가 그를 찾고 예배하며 섬기는 것이다.
제 11 조 성령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
우리는 또한성령은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므로 그는 지음을 받거나 창조되거나 또는 탄생하신 분이 아니고 다만 성부와 성자 두 분에게서 발생하시는 분임을믿고 고백한다. 그는삼위일체의 순서에 있어서는 셋째의 위격이시며, 성부와 성자와 같이 하나의 동일한 본질과 존귀와 영광을 가지신분이며,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듯이 성령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제 12 조 세계의 창조와 천사에 관하여
우리는 성부가그의 아들인 말씀으로 그가 보기에 좋은 대로 무에서 하늘과 땅과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시고 개개의 피조물에게 존재와 형태와 모습과 창조주를 섬길각각의 구체적인 업무와 기능을 주셨다고 믿는다.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무한한 능력으로 그의 영원한 섭리에 따라 모든 만물을 끊임없이 보존하고 통치하시며 사람들이 하나님을섬기도록 피조물로 하여금 사람을 섬기게 만드셨다고 믿는다.
하나님은 또한천사를 선하게 창조하시사 주께서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사자로서 봉사하도록 하셨다. 그런데 어떤 천사들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고상한 지위에서 타락하여 영원히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다른 천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함없이 본래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악마들과 악령들은 타락하여서 하나님과 모든 선한 것의 원수가 되었다.그들은 온 힘을 다해 교회와 교회의 개개 회원을 유린하려고 지켜보며 또한 그들의 악한 계략으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살인자들처럼행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 자신의 악 때문에 영원한 정죄를 받아 날마다 무서운 고통을 기다리게 되었다.그러므로 우리는 영물들과 천사들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의 과오를 배격하고 혐오하며, 또한 악마들은 피조 된 존재가 아니라 독자적인 기원을 가진 존재라든지 또는 타락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본성적으로 악한 존재들이라고주장하는 마니교도들의 과오를 배격하고 혐오한다.
제 13 조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우리는 이러한선하신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 그것들을 저버리시거나 혹은 운명과 우연에 내버려두지 않고 그의 거룩한 뜻에 따라 만물을 지배하시고 다스림을믿는다. 따라서 만물가운데 그의 지시 없이 발생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창시자가 아니시며또한 범행된 죄악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분이 아님을 믿는다. 왜냐하면 그분의 능력과 선하심은 너무도위대하고 측량할 수 없을 정도라서 악마와 악인들이 비록 불의하게 행할 때일지라도 그분은 가장 탁월하고 정의로운 방법으로 자기 일을 정하시고 실행하시기때문이다. 또한 사람의 이해를 능가하는 그분의 활동에 대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를 넘는호기심을 가지고 질문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우리는 최대의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가리워진 하나님의정의로운 심판을 찬양하며, 우리의 피조물의 한계를 넘지 않고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것만을 알기위하여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으로 족하게 여긴다.
이 교의가우리에게 말할 수 없는 위로를 주는데 그 까닭은 어떠한 일도 우리에게 우연히 닥치지 않고 오직 가장 은혜로운 하늘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발생하는것임을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버지로서의 배려로써 우리를 지켜보시고 자기에게 속한 모든 피조물을 그의 능력으로 지키시기 때문에 우리의 머리털 한 가닥도(왜냐하면 그 털 모두가 세어져 있기 때문에), 또 참새 한 마리도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땅에 떨어질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완전하게 신뢰하는 가운데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다.그 까닭은 그의 뜻과 허락 없이는 그 어떤 악마와 우리의 모든 원수들도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그들을 철저히 통제하시고 제압하심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은 아무 것도 상관하시지 않고단지 모든 것을 우연에 맡겨 두신다는 에피큐리안 사상의 저주스러운 과오를 배격한다.
제 14 조 인간의 창조와 타락, 그리고 선을 행할 수 없는 부패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이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되 자기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만드시고,모든 일에 있어서 그의 뜻에 일치되게 사람이 뜻하도록 하기 위하여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지으셨다고 믿는다.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영예로운 상태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예로운 상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였고 또한 자신의탁월한 상태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악마의 말에 귀를 귀울임으로써 의도적으로 자신을 죄에 복종시키고 결과적으로 죽음과 저주를 받게 되었다. 이때 사람은 자신이 받은 생명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범하였던것이다. 사람은 그의 죄로 인하여 참된 생명이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옴으로써 그의 본성 전체가 부패하였다.이 모든 일들로 인하여 그는 육체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모든 면에서사악하고 왜곡되고 부패하게 된 인간은 과거에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그의 탁월한 소질들을 다 상실하였고 단지 그 소질들의 흔적만 약간 남아 있게되었다. 그 남은 흔적은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죄악과 부패에 대하여 변명할 수 없게 하기에 충분한 증거가 된다. 성경은 우리에게인간의 부패로 인하여 인간 안에 있는 어떠한 빛이라도 어둠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빛을 내고 있으나 어둠은 그 빛을 깨닫지못하였다고 가르친다. 사도 요한은 인류를 어둠이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우리는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한 교훈에 있어서 전적인 부패와 상충하는 모든 교훈을 배격한다. 이는 이제 사람은 죄의 노예에 지나지 않으므로 하늘에서 주신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에게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내게 올 수 없다고 하셨으니 누가 스스로 어떤 선을 행할 수 있다고 감히 자랑할 수 있을까? 육의 생각은하나님의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안다면 누가 자신의 뜻을 영화롭게 할 수 있겠는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성령의 선물들을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누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할 수 있을까? 요컨대,우리의 능함은 우리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임을 깨달을 때 누가 감히 어떤 것을 자신의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사도가말한 것을 올바로 그리고 분명하고 확고하게 주장해야 한다.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선한 즐거움을 위해 우리가 뜻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사실이다.이는 그리스도가 사람 안에서 역사하시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에 일치할 수 있는 생각과 뜻을 가질 수 없기때문이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우리에게 가르치셨다.
제 15 조 원죄에 관하여
우리는 아담의불순종으로 인하여 원죄가 모든 인류에게 퍼졌다는 사실을 믿는다.원죄는 인간의 속성 전체의 타락이며 또한 유아라 할지라도 모태 안에서 전염되는 유전적인 악이다. 원죄는 사람 안에서 모든 종류의 죄를 만들어내는 죄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님 보시기에매우 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모든 인류를 정죄하시기에 충분하다. 원죄는 세례의식으로도 박멸되거나 제거될수 없다. 왜냐하면 마치 물이 샘에서 솟아나듯이 죄가 이 통탄할 원천에서 끊임없이 솟아나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의해 죄사함을 받기 때문에 원죄로 인하여정죄에 이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신자들은 죄 가운데서 평안하게 쉴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신자들은 원죄라는 부패를 의식하면서 이 사망의 몸에서 구원을 받고자 종종 탄식한다. 우리는 원죄는 단지 모방의 문제라고 주장하는 펠라기우스파의 과오를 배격한다.
제 16 조 하나님의 선택에 관하여
우리는 우리의최초의 사람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아담의 모든 후손이 멸망과 파멸로 떨어졌음을 믿는다. 이때 하나님은 여전히 자기 본연의 존재, 즉 자비롭고 공의로우신 분으로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자비 가운데 사람들의 행위가아니라 오직 자신의 영원하고 불변한 뜻과 선함에 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출하시고 보존하신다.그 밖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그들 스스로 택한 타락과 멸망 가운데 내버려 두신다.
제 17 조 타락한 인간의 구원에 관하여
이처럼 사람이스스로 육체적인 죽음 및 영적 죽음에 떨어져 완전한 비참에 이른 채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쳐 떨고 있는 것을 보신 은혜로우신 우리 하나님은 놀라운지혜와 은혜 가운데 사람을 찾기 시작하셨음을 우리는 믿는다.하나님은 사람에게 자기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심으로 위로하셨는데, 그 아들은 여자에게서나서 뱀의 머리를 깨뜨리고 사람을 회복하실 것이다.
제 18 조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그러므로 우리는하나님이 옛날에 조상들에게 거룩한 예언자의 입을 통하여 그가 정하신 때에 자기의 독생자이신 영원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고 그약속을 이루신 것을 믿는다. 그 아들은 종의 형상을 취하셔서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나셨고, 모든 연약함을 지닌 참된 인성을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셨다. 그 이유는 그 아들은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된 동정녀 마리아의태내에서 수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만 몸으로만 인성을 취하신 것만이 아니고 참 사람이 되기 위하여 참된인간의 영혼도 취하셨다. 그가 몸과 영혼을 다 구원하기 위하여 두 가지를 다 취할 필요가 있었던 까닭은 사람은몸 뿐만 아니라 영혼도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의 몸을 취하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재세례파 신도들의 이단설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는 어린아이와 똑같은 몸과 피를 공유하셨다고믿는다. 즉,그는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서 다윗의 그 씨로 태어나셨다. 그는 동정녀 마리아의태의 열매이고 여자에게서 나셨고 다윗의 후손 이새의 뿌리에서 나셨고 유다의 지파이시다. 육신으로는 유대인에게서나셨고, ‘그 아들’은 아브라함의 후손과 관련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그 씨’로 나셨다.그러므로 그 아들은 모든 면에서 죄를 제외하고는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셔야 했다. 그리하여 그는 참으로 우리의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이다.
제 19 조 그리스도의 위격 안에서의 두 본성
우리는 이수태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품격이(Person)인간성과 불가분리적으로 연합되어 함께 되었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두 아들이있는 것이 아니며 또한 두 품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신성과 인성의 두 본성이 단 하나의 품격 안에서 연합되었다고 믿는다. 그러나 각 본성은 그 자체의 독특한 자질을 보유한다. 그리하여 그의 신성은 언제나 창조된 것이아닌 상태로 유지되면서 시작하거나 끝나는 날도 없이 하늘과 땅을 채우신다. 한편 그의 인성도 그 자질을 잃지않고 유한한 존재인 피조물로서 남아 있게 되는데 이는 그 시작하는 날이 있고 실제 몸에 속하는 모든 특성을 보유한다. 그럼에도 그의 부활하심에 의해 그의 몸은 불멸하게 되었으나 그의 인성에 있어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의 구원과 부활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실제성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의신성과 인성은 한 품격 안에서 아주 밀접하게 연합되었으므로 그가 죽을 때에도 분리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가 죽으실 때 그의 아버지의 손에부탁하신 것은 그의 몸에서 떠나던 진짜 사람의 영이었다. 한편 그의 신성은 언제나 그의 인성과 연합하여 그가무덤 속에 누워 있었을 때에도 함께 하였다. 그의 신적인 속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재하신 적이 없었으니 그의유아기에는 신성이 비록 얼마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지라도 역시 같이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가 참하나님이며 참 사람임을 고백한다. 즉 자기 힘으로 사망을 정복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자기 육신의 연약함에 따라 우리를 위하여 대신 죽을 수 있던 참 사람이시다.
제 20 조 그리스도의 안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에 관하여
우리는 완전하게자비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시사 불순종을 저질렀던 인간의 본성과 똑같은 인성을 취하게 하시고 그 인성 안에서 가장 괴로운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죄의 형벌을 짊어지게 하신 것을 믿는다.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아들에게 우리의 불의를 지우시고 그 아들에게 자신의 공의를 나타내셨고, 죄를 짓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를 쏟으셨다. 하나님은 가장완전한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죽음에 넘겨주시고 그를 통하여 우리가 불멸과 영생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그 아들을 부활하게 하셨다.
제 21 조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에 관하여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열을 따라 하나님의 맹세에 의하여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셨음을 믿는다.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선지자들이 예언한대로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 앞에서 십자가의 나무 위에서 자신을 바쳤을 뿐더러 우리의 죄를 씻어 없애기 위하여 그의 보혈을 쏟으셨다.이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거룩하신 진노를 가시게 하기에 충분한 보상을 치르신 것으로 믿는다.
이는 성경에기록된 대로 그분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징계를 받으셨고 우리를 치유하기 위해 매를 맞으셨다. 그는 마치 양처럼 도살장으로 이끌려 가서범죄자로 취급당하시며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사형 죄수로 정죄받으셨다. 하지만 본디오 빌라도는 처음에는 예수님을무죄로 선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자기 잘못이 아님에도 우리를 대신하여 생명을 지불하셨다.즉, 불의한 자를 위하여 의로운 분이 죽음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몸과 영혼으로 우리의 죄 값에 해당하는 무서운 형벌을 느꼈고 그의 땀은 땅에 쏟아지는 핏방울처럼 되었다. 마침내 그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고 부르짖으셨다. 예수님은우리의 죄 사함을 위해 이 모든 고통을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사도 바울이 말한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고상함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마땅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상처 안에서 위로를 발견하며,단번에 드려진 그분의 희생 외에는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을 찾거나 꾸며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신자들은 예수님의 희생에 의해 영원히 완전하여졌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천사는그를 예수, 즉, 구주라고 불렀으니 그 까닭은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제 22 조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우리의 칭의
우리는 성령께서우리로 하여금 이 위대한 신비에 관한 참된 지식을 얻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 마음에 참된 믿음을 불어넣어주심을 믿는다. 참 믿음은 모든 공로를 가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받아들이며 그를 소유하며 그 분 밖에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다 있던지 그렇지 않으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예수님 안에 다 있다면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한 자는 완전한 구원을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는충분하지 않다고 여기고 그분 외에 다른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끔찍한 모독이 된다. 그러한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반구주(半救主)에 불과한분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우리는사도 바울처럼 믿음만으로, 즉 율법의 행위를 포함하지 않는 믿음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좀 더 분명히 말하자면 믿음 자체가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까닭은 믿음은 우리의 의가 되시는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행하신 많은 거룩한 공로와 행위들을 우리에게 전가시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의이며,믿음은 그분의 모든 은총 안에서 그와 계속 교통하도록 해주는 도구이다. 그분의 모든은총이 우리의 것이 될 때 그것들은 우리의 죄를 사면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다.
제 23 조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우리의 의에 관하여
우리는 다윗과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친 것처럼 우리의 모든 복락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죄 사함 안에 있으며, 그 안에는 하나님 앞에 내놓을 우리의 의도있다고 믿는다. 다윗과 바울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공로를 묻지 않고 의롭게 여기시는 자의 복에 대해 선포한다.바울은 또 말하기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선물로 받는다고한다.
그러므로 우리는이 굳센 터전을 항상 붙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 그분 앞에서 겸손한 가운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이나 혹은 우리의 공로를 주장하지 않고 다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만 의지한다.우리가 그를 믿을 때 그의 순종은 우리의 것이 된다.
이것이 우리의모든 죄과를 가리우기에 충분하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에게 나아갈 자신감을 우리에게 주기에도 충분하다. 즉, 우리의 처음 시조 아담이 두려움에 떨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숨으며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감추려고 하였던 것과는 달리 우리는 두려움과공포와 떨림에서 해방되었다. 하지만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타나려 할 때 우리 자신이나 또는 아무리작은 다른 피조물에라도 의지하면 우리는 저주를 받아 멸망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다윗처럼 기도해야한다. “오 주여,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앞에는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제24 조 사람의 성화와 선행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말씀을 들음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얻는 이 참된 믿음은 사람을 중생시켜서 새 사람을 만든다고 믿는다. 참 믿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새 생활을 하게하며죄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한다. 그러므로 의롭게 하는 믿음은 경건하고 거룩한 생활과 무관하다는 말은 참말이아니다. 도리어 참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나오는 그 어떤 행위도 할 수 없고 다만 자기 사랑을위하여 살던지 아니면 저주가 무서워서 두려움 가운데 행할 뿐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믿음이 사람 안에서 결실을나타내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까닭은 우리는 헛된 신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서 말하는사랑으로 역사하는 참된 믿음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니, 이 믿음은 사람을 격려하여 하나님이 말씀으로 명령하신일들을 실천하게 한다.
믿음의 선한뿌리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받아들일 만한 것이니 그 행위들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들은 우리를 의롭다하심에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이유는 우리가 어떠한 선한 행위를 하기 이전에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기때문이다. 선한 나무 없이 선한 열매가 불가능하듯 참 믿음이 없이는 우리의 행위들은 선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선한 일을 행하되 그것이 우리의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우리가 무슨 공로를 세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행한 선행에 관하여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빚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이 된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기뻐하시는 일을 뜻하게 하시며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기록된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한편 우리는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행에 상을 주실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그러나 주께서 상을 주심은 그분의 은혜에 관을 씌우는 것으로써 오직 주의 은혜이다. 더욱이 우리가 선한 행위를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은 선행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행위는 죄성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형벌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우리가 한 가지 선행을 행할 수 있다하더라도 하나의 죄를 생각만해도 하나님은 그의 선행을 거절하시기에 충분하다. 이때 우리의 빈약한 양심이 우리 구주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에 의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아무런 확신없이 의심을 품고 좌우로왔다 갔다 할 것이며, 계속 가책으로 인해 고민하게 될 것이다.
제 25 조 율법의완성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우리는 율법의의식과 표상들이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로 폐지된 것과 또 구약의 모든 그림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것을 믿는다. 그러므로 율법의 의식과 표상을 사용하는 것은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폐지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그것들이 지니고 있던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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